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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04월 30일


변환과 중립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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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혁 기자  | 작성 21-10-14 10:47  |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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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십 대 후반에 접어든 나는 젊을 때부터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편했다

자정 이전에 잠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몸이 그런 리듬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날은 밤 열 시가 되기 전에 잠이 쏟아지고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이 떠지기는 날도 잦아진다

나의 몸 전체에는 노화가, 나의 눈에는 노안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한 나는 요즘 생리적 진실 너머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러한 변화가 곧 내 몸을 지배하는 하늘의 이치인 바, 몸의 변화를 통해 스스로 알아채고 다다라야 할 정신과 영혼의 이치에 대해 헤아려보려 한다

 

 노안을 맞으며 내린 잠정 결론은 이제 눈으로 보는 일을 줄이라는 요구이구나.

눈 말고 가슴과 몸으로 보라는 것이구나. 더 많이 느끼며 살라는 지시구나. 또한, 너무 가까운 시야에 갇히지 말라는 요구이구나.

멀리, 확연한 경계가 사라지고 뒤섞여 빚어내는 풍경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있는 진실도 함께 보라는 것이구나

이제 힘을 빼고 부드러운 리듬 위에 올라타라는 의미구나하는 것이다

그렇듯 세월의 흐름에 따라 몸도 마음도 변해가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나는 불안과 불행, 고독과 우울로 가득 찬 삶을 살았고, 현실에 충실하지 못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죄의식에 자주 시달린다

그런 내 마음 상태를 관조하면서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책임이란 단어는 언제나 무거운 짐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철이 든 사람이 인생을 향해 감당해 주어야 할 당연한 몫처럼 여겨진다


영국의 유명한 한 코치는 변화의 두 가지 핵심을 인식과 책임이라고 했다

먼저 일차적 단계인 인식 ', < 이너게임 inner game >이란 책에서는 '어떤 것을 완전히 인식하면 누구든 그 일에 책임을 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것을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완전히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먼저 인식의 주체인 자신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식적으로 생각과 행동을 관찰하고 어떻게 선택하고 결정하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책임(responsibility)이란 단어는 response ability가 합성된 말이다. 반응을 선택하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책임은 무거운 짐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선택의 주체인 자신의 반응을 나타내는 말이다

어떤 사건이 생길 때 그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그 문제의 인과와 그 문제가 담고 있는 의미들을 통합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그저 습관에 의해, 반사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반응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책임이다

인식과 책임은 같은 것의 다른 얼굴이다


 우리가 우리의 순수의도에 의해 매 순간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획기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반응할 수 있다면, 과거의 것들에 매여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잘못 선택하는 일은 현격히 줄어들 것이고 우리가 가진 생각이나 신념들이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믿음이나 정보로 형성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이나 확신이라는 것도 세대와 세대를 거쳐 우리에게 전해져 온 하나의 견해일 뿐이다. 그것이 진실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세상에는 외로움 없이 쓰인 노래가 적지 않다

고독이 주는 통증을 거치지 않은 사유 또한 많아지고 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지 않고 허구적이고 수탈적인 시류를 쫓아 그것을 더욱 자극하는 미각에 치중하는 이야기도 넘쳐 나고 있다

발가벗은 채 스스로를 대면하는 시간을 갖지 않고 시류와 기교를 쫓아 나오는 언어와 노래와 전략과 사랑을 나는 믿지 못한다

로버트 앨런이란 사람은 ‘ 머리 속 생각에는 대가가 따른다 ’ 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받아들인 잘못된 신념과 가치, 견해들 때문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생각과 믿음, 가치관 역시 우리 자신이 아니다

나 아닌 것들을 비워내고, 나인 것들로 내 속을 채우면 나라는 하드웨어는 나의 행복을 위해 결정하고 반응해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철저히 우리의 선택에 놓여있고 그래서 철저히 우리의 책임인 것이다

지금 나의 현재는 내가 만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삶에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책임도 나에게 있다

이제 내 안에 내재된 '책임에 대한 힘'을 회복할 때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불안과 우울의 증세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잘못 살았다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인식이 깊어간다.

 “목표 때문이 아니라 전환기를 거치기에 인간은 위대하다.”고 랠프 왈도 에머슨은 설파했다.

살다 보면 이렇게 전환점(turning point)’이라 부를만한 특별한 변화의 시기가 찾아온다

사람들은 전환기를 회상하며 그때 이후 모든 게 달라졌어라고 말하곤 한다

우리가 전환기와 만나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다

대부분의 계기는 부정적인 사건이나 경험이다

가장 흔한 예로 해고와 같은 직업적 변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같은 인간관계의 상실을 꼽을 수 있다

긍정적인 사건이나 경험을 통해서도 전환기를 마련할 수 있지만 드문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좋은 시절에는 변화를 꾀하지 않는다. 그것을 유지하고 싶어 할 뿐이다.


 전환기의 구체적인 과정도 사람마다 다르다

전환기를 특정한 몇 단계로 설명하는 책들도 있지만, 예외가 너무 많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이런 단계보다 중요한 점은 이 시기에 엄청난 변환(transition, 내적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변환의 과정 역시 사람마다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중립지대라는 혹독한 시절을 거쳐야 진정한 변환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예외가 없다.


 변환의 중심에 위치하는 중립 지대는 카오스의 시기로 상징된다

그리고 이 시기는 빛과 그림자라는 양면적 특성이 있다. 중립지대의 그림자는 감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중립 지대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에 빠진다.

우울함, 상실감, 공허함, 혼란스러움 등 어떤 감정이든 부정적이다. 그래서 중립지대를 대변하는 용어 역시 부정적이다

미로, 안개, 어두운 숲, 심연, 막다른 길, 늪 등, 중립 지대는 순수한 에너지의 초기 상태로 복귀하는 시기이다

중립지대의 긍정적인 면이다

중립지대는 자기 안의 에너지의 원천을 확인하고 에너지를 모으는 기능을 한다


 이 에너지는 스스로를 거듭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중립지대를 충실히 거친 사람은 진정한 변환, 즉 새로운 자기로 재생(再生)할 수 있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중립지대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립지대를 공중부양하듯이 그냥 생략하고 싶어 한다

중립지대는 그 특성상 비생산적으로 보이고 부정적인 감정과 혼란스러운 내면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립지대를 겪지 않고 생략하거나 빨리 건너는 건 위험하다

왜냐하면 풀지 않은 문제는 반복되고, 매듭짓지 않은 위기는 결국 보복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잘 표현한 말이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서 몇 번 편한 길을 택하고 나니, 어느새 코너에 몰렸다는 것이다

삶의 코너에 몰리지 않더라도 중립 지대를 거부한 사람은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 가장 빛나는 자기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변환 전문가인 윌리엄 브리지스는 말했다

중립지대를 거부하면 현실에 대한 인식과 목적을 깊이 깨달을 기회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사과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한겨울의 추위를 견뎌내야 하듯, 우리는 중립 지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변환과 중립 지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전환기는 변환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고, 변환의 성패는 중립지대를 얼마나 충실히 거치는지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변환과 중립지대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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