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김영희 시인의 신작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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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달리는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면
잡히다가 미끄러지는 기억들과
손가락 사이를 밀고 들어오는 바람이
형체를 벗기 위해 무게를 버린다
문밖으로의 생을 꿈꾸면 문안에 갇히고
헛것을 살아야만 편안해지는
알 수 없는 모순을 생각하다
무작정 집을 나선다
액셀러레이터의 가속과
브레이크의 감속을 즐기다 보면
말 짜고 되 짜듯이 계획한 여행보다
오히려 유쾌하다
누군가는 달려가고 누군가는 서서 기다리는
길 끝에 있는 도착점을 향한 생의 한 마디를
계획 없이 접으로 가는 길
산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구름의 밀도는
부피 이상의 깊이는 알 수 없으니
도통 무관하여 참 가볍다
정선 출생, 원주 거주
2014《문학과 의식》등단
『여름 나기를 이야기하는 동안』외 3권
원주문학상, 강원문학작가상 외 다수
< 시작 노트 >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는 여행은 결과물과 성과라는 단어에 매이게 된다.
어느 하루 쯤 목적 없는 여행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다 접어 놓고, 다 내려놓고 훌쩍 어딘 가로 떠나보면 새로 생성되는 나를 만날 수 있다.
어떤 의미가 더 깊어지기 전에 한 번 훌쩍 떠났다가 돌아오는 것, 그것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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