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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방미인의 백세시대 - 닥종이 인형 작품으로 천추의 한을 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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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혁 기자  | 작성 21-12-17 16:13  |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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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종이 인형 작품으로 천추의 한을 풀어


김향숙 / 한지공예가

 


  친정 아버지의 올해 연세가 94세이시니 33년 전의 일

당시만 해도 시골 마을에선 환갑 잔치를 성대하게 하는 풍습이 남아 있었다

친정의 사랑방에는 며칠 전부터 아버지의 고향 경상도에서 오신 친척 분들이 대기하여 축하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마당에는 천막을 치고, 돼지도 잡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전 부치고 떡 빚고 김치를 담그며 떠들썩 떠들썩. 음식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나와 네 명의 동생들은 단체로 한복을 맞추고, 병풍도 세워 놓고, 미용실에서 한껏 머리 손질을 하느라 분주했었다.


  그런데 친정 아버지 환갑 전날 남편과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가 나고 말았다

조수석에 앉아 있다가 심한 충격으로 자동차의 유리 파편을 맞아 실신했었나 보다. 얼굴 전체를 붕대로 감긴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환갑 잔칫날은 이틀이나 지난 뒤였다

문병 오신 친정 아버지께서 조수석의 피가 한 세숫대야나 고여 있었다며 통곡하셨다

나는 수십 바늘이나 꿰맨 얼굴의 상처보다 아버지의 통곡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이후로 예전의 얼굴을 되찾지 못하고 몇 년에 걸쳐 성형수술을 하며 고통스러운 후유증을 앓았지만, 그보다 괴로운 건 환갑날의 사고로 인해 마음을 다치신 아버지에 대한 빚이었다

장녀로서 미처 못 차려 드린 잔칫상의 미련이 가슴을 후벼 파는 것이었다. 환갑 사진 속,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충격스러운 표정을 미처 마주할 수가 없어, 명절에도 방문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돌이킬 수 없는 그 날을 어떻게 하면 치유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그림을 그려 보았다

 

 밝게 웃는 모습의 부모님, 풍성한 잔칫상~~~ 

그래도 일말의 응어리로 아쉬웠던 때, 우연히 신문에서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김영희 저자의 닥종이 인형 전시회를 접하게 되었다

병을 고쳐 보겠다는 신념(?)처럼 닥종이 인형을 만들어 그날의 불효를 다소나마 지우고 싶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두 아이를 양육 시키며, 며칠 밤을 수없이 지새워가며 닥종이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슬프지 않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 앞에 큰절을 올리는 장녀 부부 그리고 온갖 과일과 고기, 대형 실타래.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내 부모님의 생신상

한지를 한 장 한 장 뜯어 붙여 조형물을 만들고 또 만들었다

풀칠하면 마르는데 일주일 이상 소요되어 인형 하나 만드는 데만 석 달이 걸렸다

원주 한지 공장을 드나들며 주문한 색 한지로 곱게 한복을 입히고 형형색색의 파티 분위기를 창작해 냈다. 


  표정이 마음에 안 들면 몇 달 걸려 완성한 인형들을 쓰레기통에 처넣으며, 전국의 유명한 닥종이 인형 작가들에게 사사하여 드디어 완성한 작품 환갑잔치’! 한지문화제에 출품했더니 상을 주었다.  

그 이후로 몇 년 동안 닥종이 인형으로 전국의 한지 대전에서 수상하고 대상의 영예도 안게 되었다. 

  수상작 전시회 때 부모님을 모시고 갔는데 실물보다 못나게 만들었다고 실망하셨지만 그래도 작품으로 나마 내 천추의 한을 풀어서 이제는 여한이 없다. 더욱이 한지 공예를 비롯한 연관 콘텐츠들로 유튜브를 통해 팔방미인의 백세시대를 방송까지 하게 되어 아침마다 조회수 올라가는 기쁨까지!! 그야말로 일석삼조, 사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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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리’ 

  국전 심사위원의 평! ‘전년도에 비슷한 유형의 대상작이 있었기 때문에 아깝지만 대상 후보에서 밀려났다고...’ 

  그걸로 만족! ‘의리작품을 만들면서 힐링했고, 가능성을 보았고, 도전의 역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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