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05-06
  • 2024년 05월 06일


문턱 / 김영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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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혁 기자  | 작성 21-12-28 12:54  |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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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 



김영희/시인



 한 장 남겨졌던 달력이 문턱을 넘어 겨울 속으로 깊이 들어앉았다.

지나온 계절에는 남은 수분을 응축하느라 분주하던 나뭇잎들이 있었다

하나 둘 나무 아래로 내려앉더니 몇몇은 바람에 몰려 다니며 웅성거리기도 하고, 몇몇은 이미 흙과 섞여 바스러지고 있다

햇살도 조도를 낮추고 나지막한 빛을 쏘아 올린다

또 한 계절이 겸손하게 문턱을 넘어가는 모습이었다.

 

건너온 몇 개의 문턱을 기억한다.

이름을 접고 한 사람의 아내로, 누구의 어머니로, 그리고 찾아 나선 이름과 이름들 사이에 놓여 있던 문턱들을 생각한다.

어느 문턱은 수월하게 넘기도 했지만 어느 문턱 앞에서는 좌절도 하고 눈물도 흘렸었다. 괜한 남 탓도 해보던 문 안과 문밖의 상황들을 생각한다

그곳에는 늘 기다림과 간절함이 함께 있었다.

 

벌써 2년이 지나간다

코로나 바이러스, 그저 잠깐 한 계절이 지나가듯 스쳐 지나가리라 했던 일이다

방역 수칙을 가볍게 넘긴 탓인지,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탓인지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달라졌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어느 의학자는 토착화 되리라는 예견도 하고, 어느 박사님은 2023년쯤 코로나 종식되리라는 예견도 한다

더불어 가짜 뉴스도 SNS로 전파되다 보니 두려움에 웅성거리고 남모를 불안에 떠는 경우가 많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 문턱을 넘는 일이 참 숨 가쁘다.

 

 겨울 숲은 참 조용하다.

숲 속엔 제 모습을 한껏 표현하던 봄이 있었다

그땐 새들도 사랑을 찾아 울어 대고,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면서 소란스럽고 바쁜 숲을 닮아갔었다. 그런데 새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절대 고독에 들어간 숲에 대한 배려로 새들도 우짖지 않는 숲 길을 걸어본다.


 왜 우리는 누군가가 침묵하면 상대적으로 더 목청을 높이는가?

왜 거리 두기 수칙을 가볍게 여기고 몰려 다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걸까?

 

어느 하루 쯤 겨울 숲에 가볼 일이다.

숲은 더 무성한 숲을 이루기 위해 한 계절은 침묵으로 지낸다. 잎도 피우지 않고 많은 수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절대 고독 속에서 내면의 자기를 키워내고 있다.

아름다운 봄 날을 꿈꾸며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견뎌낸다

숲이 문턱을 넘어서는 방법이다.



<약 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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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출생, 원주 거주

2014문학과의식등단

여름 나기를 이야기하는 동안3

원주문학상, 강원문학작가상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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