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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05월 07일


잃어버린 친구에게 / 김향숙(한지공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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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혁 기자  | 작성 22-01-13 09:49  |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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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친구에게



한지공예가/ 김향숙

 


  우리 고2 때 2학기의 가을 어느 날이 선연하게 클로즈업된다. 

너의 얼굴은 다이아몬드형. 

검색해 보니 고집이 세고 실행력이 강하다고 나왔네. 그러고 보니 맞는 말 같아서 경악스럽기도 하다.


  난생 처음 자취를 하게 되었을 때 우연히 나의 처소 옆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뒤쫓아갔었지. 

너의 자취방은 황톳빛 언덕 아래로 500m 정도 더 가야 했어.

 “연애야. 너 옆 반에 전학 온 거 봤어. 서울에서 전학 왔다며? 나도 서울에서 살았었거든. “너는 씨익 웃었어!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듯. 

그렇게 너와 나는 이산가족이 상봉한 것처럼 너무 쉽게 마음을 열었던 거야. 

다음날부터 우리는 그림자처럼 늘 하나였어. 학교에 갈 때도,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도, 주말에 버스를 타고 바닷가를 산책할 때도.


  바닷가에서 해 뜰 때까지 올 나이트를 했었지. 

칠흑 같던 바닷가에서 비틀스의 ‘Yesterday’, 정현의 ‘미련’ 등을 통기타로 반주하며 수백 번 불렀으려나? ‘내 마음이 가는 그곳에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가사가 현실을 예감한 듯 지금도 안 잊혀지네.

  학교 땡땡이치고 재개봉 영화 ‘벤허(Ben-Hur)’를 세 번이나 봤었지.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오! 신이시여, 과연 이게 내가 만든 작품입니까?”라고 부르짖었다는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 감독의 ‘벤허’! 세 번을 봤는데도 영화관에서 안 쫓겨났었어, 요즘은 한 번만 볼 수 있잖아. 

그 영화, 성탄절 날이면 공중파에서 으레 방영되더라, 볼 때마다 도둑 관람이 생각나서 풉하고 웃었네, 질리지도 않는지.


  두 살 위였던 넌 내게 언니처럼 살뜰 하게 챙겨주었어. 

풍로에 밥을 지을 때마다 맨날 태워 먹고 반찬 이라고는 고추장 한 가지였는데, 너는 장조림 이나 멸치 볶음, 김 구이, 오이지 등 맛난 밑반찬을 쟁여줘서 난 호강을 했던 거야. 

속옷 빨래도 세제를 넣고 폭 폭 삶아줘서 우물가에서 빨아 빨랫줄에 걸 때면 눈이 부시고 절로 흥이 났어. 


 그뿐인가. 

날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너는 꼭 참지 않고 나를 보호해 줬지, 

특유의 중성적인 매력의 소유자라 웬만한 남자들도 너한테 형님! 이라고 지칭했었지. 

내면은 여성스러워서 섬세한 인테리어에 마법 같은 소질이 있었고 영어를 잘해서 배울 점이 많았고.


  너와 몇 개월을 지내고 3학년이 되면서 동생과 같이 자취를 할 때 였나봐. 

네가 자퇴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뾰족하게 확인할 방도가 없더라구. 

10여 년 후 물어물어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 황망한 선택에 대한 소식을 너의 언니에게서 들었어.

 “에구우~ 친구가 조금만 일찍 연락했더라면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원망이 묻어나는 목소리. 

예감은 했었지만, 그래도 설마설마했는데.

  미안해 연애야! 

난 그날 너무 먹먹하고 분노가 치솟아 너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바닷가로 달려갔어! 너와 팝송을 부르던 그 자리로. 

비를 맞으며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들었지. 


 눈물은 눈에서만 흐르는 게 아니더라, 가속도가 붙어 온몸으로도 흐르더라. 

형언할 수 없는 회한과 후회가 가슴을 저며왔어. 

너의 쇼펜하우어적 염세관을 알고서도, 어릴 적 겪은 성폭행 사건에 괴로워하는 걸 인지하고서도 왜 아무 위로를 못 해줬을까? 

불가항력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쓰레기 같던 그 어린 날의 트라우마를 건너뛰어 어찌됐든 살아야 한다, 살다 보면 망각하게 된다, 상담 같은 거 받으면서 치유해 보자고 말이야.


  막내로 태어나 사랑받고 귀여움을 독차지했건만 철들기도 전부터 암흑 같던 후유증에 찌들었던 너. 

삶보다 죽음을 사랑한다며 고통 없이 죽는 법을 너무 천연덕스레 얘기하던 너. 

숫돌에 칼을 갈며 정맥의 위치를 긋곤 했었지. 


 결국, 아무에게도 말을 못 하고 인생의 꽃을 피울 나이에 스스로 팔목을 그어 기어이 하직한 생. 

마냥 애달프고 아쉽고 보고 싶고 안타깝고 그립다. 

나의 전설이 된 연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너를 그리 황망하게 보내지 않았을 거야. 

눈물로 호소하고 아픔을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최선을 다해 너를 지켰을 거야. 

가해자를 잡아서 가혹한 형벌을 받게도 했을 거야. 

절대 수수방관만 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랬으면 연애 너는 아직도 나의 친구이자 언니이며, 내 고민의 해결사로 든든한 조력자로 인생을 잘 살아나갈 텐데. 

아 그리고 너한테 나의 네 명의 손주들 자랑도 엄청나게 했을 건데. 


흥! 

사회 친구들은 손주 자랑하려면 돈을 내라고 하더라. 

넌 나를 수다쟁이로 만들어 얼마든지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아낌없이 자세하게 묻고 즐거이 경청해주었을 거야. 

여러 번 반복해도 마치 처음 듣는다는 듯 태연하게 궁금해하며 씩! 웃겠지. 

살 빼기 운동하자고 새벽마다 초인종을 눌렀을 거야. 

계절마다 밑반찬도 엄청나게 해 날랐을 거야. 

남미 등 전 세계의 오지 여행도 많이 다녔을 거야. 

넌 용감하니까.


  최근에도 남편까지 있는 젊은 여군 부사관이 성추행으로 괴로워하다가 쓰러져갔대. 

너의 완치가 불가능했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자의식이 조금 이해가 되긴 했어. 

얼마나 괴롭고 참담하고 억울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아직도 성리학적 질서를 강요하는 우리 세대에도 현존하는 파편들, 근절이 안 될까? 

제2의 연애가 없는 그런 날들이 오기는 할까?


  이제야 연애 너에게 편지로나마 내 소식을 전하려 하는 나를 용서해 줘. 

너 있는 곳에서는 어떤 괴로움도 없기를 바래


치욕과 모욕, 

공포와 폭력, 

좌절과 절망 같은. 


뒤늦게 염치없지만 약속해! 너의 몫까지 치열하게 살기로. 

그리고 천상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꼭 너를 기억할게. 

기필코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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