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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 / 김지운(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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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혁 기자  | 작성 22-01-17 09:24  |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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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

                                                        

김지운



  아침 9시경, 집 근처 사거리를 지날 때면 보게 되는 풍경이 있다. 

싸락눈이 흩날리는 한겨울에도 어기적어기적 이인 삼각을 하듯 걸어오는 부부의 모습이다. 

먼 발치에서 볼 때면 점처럼 보이던 그들이 하나인 듯, 둘인 듯 선으로 나타나 두 사람의 실루엣으로 하나가 아닌 둘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서로 허리를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오른쪽을 아내는 반대쪽에 풍을 맞아 둘이 하나 되어 운동하러 나온 것 같았다. 

어디론가 균형을 잡고 걸어가는데, 그들이 눈사람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등 시린 삼동三冬의 계절이 와도 외롭지 않겠구나. 

반을 잃어도 반을 얻은 충만함은 서로에게 견고한 지팡이가 되어 주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난 바다 멀고 긴 인생 여정도 힘겹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도서관에서 ‘동행’이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열렸다. 

젊은 연인의 뒷모습도 있었다.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 전시회였는데, 그 내용이 다양했다.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된 동행은 어느 노 부부의 뒷모습이었다. 

그림에서도 그들의 모습은 연륜이 느껴질 정도로 구부정해 보였다. 

오랜 시간 함께 울고 웃으며 보낸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생각해 보았다. 

긴 세월 함께 한 노 부부의 모습과, 아침에 본 고난 속에서 함께 하는 풍을 맞아도 고난 속에서 함께 한 아침에 본 풍경이 오버랩 되면서 동행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사랑,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 것 같아 결혼을 한다. 

결혼식 때 주례사 앞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도 하늘이 갈라 놓을 때까지...’라며 변치 않을 것 같이 서약을 하면서 왜 그리 이혼 가정은 많을까? 


 내가 아닌 또 다른 인격체와 하나 되기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인 것 같다. 

우리 주변엔 상대에게 느낀 매력이 오히려 독이 되어 힘겹게 살아가는 부부가 많다. 

어쩌면 그래서 결혼이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눈의 콩깍지가 벗겨지면 알게 되는 단점부터 보인다면, 인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만나 살던 별이 달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갈등 속에 헤매다가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 속에서 침묵하며 서로를 원망하다 각자의 별로 가버리는 시대다.


  인생을 함께 한다는 것은 표면이 아닌 내면을 드러내며 살아야 하므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기본이다. 

연애할 때 그토록 사랑스럽던 그 남자, 그 여자는 다 사라지고 생활 속의 아줌마, 아저씨가 실랑이를 벌이며 서로를 헐뜯는다. 

현실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이상만 았던 결혼은 아니었는지 되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아담은 최초의 동행자였던 하와를 ‘내 살 중의 살이요, 내 뼈 중의 뼈’라고 하더니 하와가 준 선악과를 먹고 나서 잘못의 원인 제공자로 말했다. 

이 모습이 결혼의 현실이다.


  당나라 시인 백낙천이 장한가에서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이 새에 비유해 노래하면서 유명해졌다는 비익조比翼鳥. 

날개와 눈이 하나밖에 없어서 짝을 짓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 없고 날지도 못해 둘이어야만 생존이 가능한 새라고 한다. 

비록 상상 속의 새이기는 하지만 동행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생각게 한다. 


 어쩌면 우리도 비익조처럼 불완전하고 미완성의 존재인지 모른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랑을 요구하면서 아이러니하게 불만과 원망의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다. 

서로의 부족을 채워가며 완전을 이루려 하지 않고 말이다.

  오늘 아침에 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의 모습은 영원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초록별 모퉁이를 걸어가는 부부의 모습이 영화 마지막 장면처럼 밀물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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