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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시인의 신작 시 / 새해를 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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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혁 기자  | 작성 22-02-03 17:31  |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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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빚다

                                                        김영희


한 줌 남은 빛까지 알뜰히 긁어모아

빈 들판 구석까지 나누어주고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듯

무심하게 산속으로 들어가는 섣달그믐 해를

흩어져 살던 형제들이 느즈러져 바라보다

빙 둘러앉아 새해를 빚는다


다지고 버무려 갖은양념으로 소를 만드는 건

온갖 맛의 나날들을 버무리기 위함일까

어머니가 한 방울 참기름을 첨가하면

시끄러운 속내들이 다소곳하게 하나가 된다


매끈한 옷을 입혀 새해 소망을 여미며

서로 달라붙어 상처 주지 말라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쟁반 위에 앉힌다


 지나버린 이야기를 다 삶아낸 만두들이

가마솥 속에서 둥실둥실 떠오르면

목청처럼 둥근 마음들이 복을 나눈다


새 날을 열기 위해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빈들과 산자락들

욕망으로 들끓던 헛된 발자국들

모두 다 같이 다소곳해지는 순간이다



시작 노트   

  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2년간이나 고향에 가지 못했다. 

타향도 오래 살면 고향이라는데 명절 때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과, 부모님 품에서 형제들이 모여 살던 고향집이 가슴 저리게 그리워진다. 

부모가 되고 보니 더 그러한 것은 나를 꽃 피워주신 부모님의 어깨를 이해해서일까? 

흩어져 살고 있는 피붙이들의 목소리와 냄새가 그리워서 일까?

가지 못하는 고향과, 만나지 못하는 형제들을 그리워하다, 오래된 추억을 펼치듯 어린 시절에 보낸 섣달 그믐날의 저녁 무렵을 소환해 왔다. 가마솥 아궁이에선 불꽃이 활활 타올랐고 매캐하면서도 아늑한 연기가 굴뚝을 휘돌아 마을로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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