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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배운다, 놀면 뭐해 / 김향숙(한지공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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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혁 기자  | 작성 22-02-11 03:08  |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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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배운다, 놀면 뭐해

김향숙

 

A4 용지였나 신문지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970년대 후반 내 나이 20대 초에 은행 합격 통지서를 받고 나서 모의 지폐를 만들어 돈 세는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물을 찍어 바른 손가락이 부르틀 정도였다. 요즘은 돈 세는 기계가 대신하지만, 당시는 수작업이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 연습을 반복하다 목이 쉬어 잠들었는데 잠꼬대까지 했을 정도다. 근무에 대비해 주산학원에 다니며 계산능력도 향상을 시켰다.


연습이 주효했는지 출근하자마자 수월한 출발을 한 듯하다. 미용실을 운영하시던 어머니가 매일 아침 머리 손질을 해 주셨다. 큰 여동생은 디자이너 지망생답게 출근복 코디를 마다하지 않았다. 예쁜 원피스나 오피스룩을 추천해 주어서 매일 밤 자정을 전후해 퇴근해도 매무새에 큰 무리가 없었다. 


다만 출납 과정에서 돈을 안 받고 입금전표를 찍어 줘 한 달 급여를 몽땅 날릴 뻔했다. 실수의 대가는 혹독해서 3시간 동안 싹싹 빌고 눈물 콧물 쏟으며 고객을 왕으로 대접하여 겨우 해결이 되었다. 똑같이 일해도 남녀차별이 심해 입사 동기 남자직원의 60%만 급여를 받았지만 따진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평소 무뚝뚝하고 사무적이다가도 회식이 있는 날이면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입을 쑥 빼 밀고 금방이라도 입을 맞출 것처럼 요샛말로 성희롱이었는데 당시는 모르는 척 대범하게 넘겨야 했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보니 까발려봐야 돌아오는 건 오히려 돌팔매질일 뻔한 세상이었다. 분기별 예금유치와 대출실적 경쟁도 치열했다.


몇 해 지나서 경력이 쌓여 출근이 여유로워 질 무렵 결혼을 했고, 육아를 위해 아쉽지만, 은행을 사직했다. 남매를 기르며 어릴 때부터 그토록 배우고 싶어 했던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다.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교회의 반주자가 갑자기 전근하게 되었다며 장로님이 반주를 맡아달라고 부탁하셨다. 능력은 안 되지만 흔쾌히 승낙하고 맹연습을 했다. 새벽에 교회에서 연습하다가 옆 방 목사관에서 목사님이 뛰쳐나오셔서 "잠 좀 잡시다!" 하시는 통에 혼비백산 도망쳐 나오기도 했다.


시어머니께서는 성가 반주하는 며느리 보게 해달라는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좋아하셨지만, 친정어머니께서는 반주가 잘못될까 늘 조마조마 간을 졸이며 예배를 하셨다는 후일담이 있었다. 나도 긴장 탓으로 진땀깨나 흘려서 건반 위로 땀이 흘러 손가락이 미끄러질 정도였다. 등으로 땀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지경이었다.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5년여 반주자의 사명은 끝이 났다.


월요일은 피아노, 화요일은 서양화, 수요일은 천 아트, 목요일은 홈패션, 금요일은 사진, 토요일은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잊는 게 싫고 호기심이 많아서 연습 날은 빠지지 않고 출석을 했다. 놀면 뭐해. 노벨상 수상 가수 밥 딜런이 "아침에 일어났던 사람과 저녁에 자러 가는 사람이 다르다."라고 말했던가. 변화와 도전을 거듭하는 호기심계의 미친 X! 적극적인 배움으로 국가자격증이 6개, 민간자격증 8개, 문화센터 등의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외국어, 공예, 미술 부문 수료증이 무려 200여 장에 달하게 되었다. 친구들이 자격증 등으로 도배해도 되겠다며 조크를 날리곤 했다. 되돌아보니 30대는 돌봄과 배움으로 인생의 밑그림을 그린 듯하다.


40대 때, 장로님이 운전학원을 차리셨다며 사무직으로 일해 달라고 하셨다. 아버지와 호형호제하신 분이기도 했지만, 경력단절녀에게 취업할 수 있도록 선처해 주신 건 아마도 교회 반주로 눈도장을 찍었기 때문이리라. 박봉에 준조세 같은 사회보험료라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민연금제도가 시행된 해였다. 곧이어 경찰청이 주관한 전문학원법에 따라 강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자 소정의 연수를 받고 운전연습장 내 기능교육에 투입되었다. 긍지를 갖고 15년간 하루 14시간의 운전 교육을 소화해 냈다.


중간에 학원장이 바뀌면서 노사 간 갈등이 심화하여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가 일할 의욕을 꺾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다시 동기부여가 되었던 계기가 생겼다. 학원장의 아들과 나의 남동생의 결혼식이 하필이면 똑같은 날이었다, 시간까지도. 그런데 결혼식 날 전 직원 대부분이 내 동생 결혼식장을 찾아온 거였다.


또 퇴근 전에 운전 연습용 차를 주차하다 다른 차 문짝을 들이받은 적이 있었다. 밤새 혼날까 봐 잠도 못 자고 출근해 보니 차가 멀쩡히 있었다. 갸웃거리며 차를 관찰하고 있으려니 다른 강사가 "어젯밤 시내 중고차 매매단지를 다 뒤져서 새 문짝으로 교체해 놨다."라는 거였다. 정비 담당 직원을 비롯한 무려 6명의 직원이 힘을 합친 불가사의한 동료애였다. 운전초보자들의 곡예 운전 속에 매 순간 드라마틱하게 보내는 일과여서 15년간 한 장의 기록사진도 못 찍었지만 따뜻한 동료들 덕분에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평소 탄탄한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 인적 네트워크는 자산 중의 자산이 되었다. 인터넷 신문사의 기자 생활을 하게 된 것도 지인 찬스와 독려해 준 절친이 있어 가능했다. 조회수가 많다고 최우수 기자상까지 받아서 한턱내려고 하는데 왠지 자랑질로 비칠까 봐 조심스럽기는 하다. 부족한 글을 읽어 준 인연들과 SNS 덕분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정보통신부의 세대 간 정보격차를 줄이기 위한 디지털 배움터의 강사로 위촉되었고 평생교육원 학습관의 스마트폰 강사로 강사은행에 등재되어 역량 강화 교육 중이기도 하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매일매일 배우는 데에 집착한 나머지 놓친 것도 많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목마르다, 꾸준히 영어를 배우는 건 영어권 나라로의 배낭여행을 꿈꾸기 때문이다. 제대로 하는 건 없지만 못 배운 것도 없는 60대의 자화상이 오늘도 묻는다, 놀면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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